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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드리다

 

특정 문자를 지면(地面)에 반복적으로 덮어쓰는 넌버벌(non-verbal) 퍼포먼스, '바이러스'를 통해 자신이 몸담고 있는 뉴욕이라는 시공의 땅바닥을 발로, 몸으로 밟고 두드리며 세상에 말을 건내온 한무권. 그것은 이방인이자 경계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일깨우고 곧추세우려는 반성적 행위이자 사회를 깨우려는 지성적 노력이었다. 

몸을 바삐 놀리며 특정 획과 철자 사이를 맴돌듯 밟고 새긴 행위의 흔적은 일종의 지성적 신문(身紋)으로, 사회적 관습과 차별에 대한 저항이자 외침이었다. 

 

최근 한무권은 경주를 오가며 '발전소'를 심화학습했다.     

원자력 발전소라는 금기시되거나 제한된 조건과 시공을 삼투하며 전기와 생명의 문제를 숙고했다. 고향 경주와 발전소에 대한 지적 성찰과 노력은 이른바 '드럼(drum)'을 매개로 한 또다른 바이러스 시리즈로 진화했다. 

'드럼의 의미, 드럼 두드리기, 드럼의 소리' 순으로 구성한 이번 전시는 기존의 '소리 없는 아우성' 이상의 적극적인 언어를 선보인다. 불의와 불이익에 대한 일반의 의식을 제고하고 계몽적 침묵과 일방적 합의를 두드리고 일깨우는 소리로 가득하다.

 

에너지와 환경의 문제를 몸과 예술언어로 접근한 이번 전시는 지난 뉴욕에서의 개인적 퍼포먼스로부터 확장된, 보다 적극적인 사회참여의지와 발언을 살필 수 있는 설치작업들을 다수 선보이고 있다.

낯익은, 한편으론 낯선 고향에서 세상을 두드리고 깨우려는 한무권의 노력과 의지는 진화된 몸의 역사(役事)이자 소통의 역사(歷史)인 셈이다.

 

박천남(기획자,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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